24년 무명에서 천만 감독까지, 장항준과 아내 김은희의 실제 이야기
# 24년 무명에서 천만 감독까지, 장항준과 아내 김은희의 실제 이야기
저도 처음에 '왕과 사는 남자'를 보기 전까진 장항준 감독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만 봐온 사람이라, 아내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자 "와이프 카드만 긁는 남자" 캐릭터로만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으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뒤에는 24년이라는 긴 시간, 그리고 한 여자의 끊임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유명인 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한 남자가 절망의 시간을 견디고 부활했는지, 그리고 그 곁에서 아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솔직하게 들어봅시다.
예능에 묻혀버린 24년,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난 장항준은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정통 영화인입니다. 초반엔 방송 작가로 활동하며 글의 힘을 먼저 익혔고, 그 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며 창작자로서의 기초를 다졌어요.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감독으로서 활동한 시간이 사실상 끊겨 있었다는 점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몇 편의 영화를 감독했지만, 그 이후로는 장항준 감독이 아닌 장항준 예능인만 남았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웃음을 주고, 아내 김은희 작가의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역할만 반복한 거죠. 장항준 감독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 시간을 "와이프 카드만 긁는 남편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자조가 아니라,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이었어요.
당시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영화감독 꿈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 생계를 위해 아내의 성공에 의존해야 했던 현실. 참고로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아내의 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해요. 이게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김은희 작가, 그저 성공한 아내가 아닌 창조자
많은 사람들이 김은희를 단순히 "장항준의 아내"로만 생각하지만, 한국 드라마계의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창조자로 봐야 합니다. 그녀는 '시그널', '킹덤', '악귀' 같은 작품으로 한국 장르물의 기준을 완전히 바꿔놓았거든요. 특히 '킹덤'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한국 작품의 가능성을 증명한 대작입니다.
근데 흥미로운 건, 이런 성공의 뒤에 장항준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김은희 작가가 작품을 준비할 때, 장항준은 카메라 기술, 수영, 취재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예능에서 "와이프 카드 쓰는 남편"으로 웃음을 주던 그가, 집에서는 아내의 창작 활동을 돕는 조력자로 있었던 셈입니다.
이건 단순한 내조가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이해와 애정이었습니다. 그도 영화인이고, 작가인 아내의 작업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장항준 감독은 가끔 아내와 함께 오래된 자신의 시나리오를 다시 영화화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불과 2~3일 전에도 그런 대화를 나눴다고 했어요. "저희 와이프가 가장 좋아하는 제 시나리오 중 하나"라며, 30년 전에 썼던 오래된 작품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니까요.
"와이프 카드"에서 "천만 감독"으로, 반전의 순간
2024년, 장항준이 감독한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했습니다. 초반에는 그저 또 하나의 영화 정도였어요. 그런데 관객들의 입소문이 점점 커지더니, 결국 1444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흥행을 넘어 감독 개인의 커리어, 나아가 부부의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수준의 성공이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이 성공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예능에서 "와이프 카드 쓰는 남편"으로 알려진 그 사람이, 자신의 창작물로 처음으로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것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 하나의 "반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약 24년간의 침묵 속에서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로요.
영화가 히트하자 장항준은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겸손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이 빚은 현명함이었어요. "이러다가 안 되는 사람을 업계에서 너무 많이 봤다"며, "와이프도 '어디 경거망동 말라'고 했다"고 했거든요. 한 때의 성공에 취해서 또 다른 실패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성숙한 태도였습니다.
천만 관객의 뒤에 있던 부부의 대화들
'왕과 사는 남자'의 성공 뒤에는 단순한 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다져진 창작자로서의 기초가 있었습니다. 장항준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아내 김은희와 끊임없이 대화했다고 합니다. 시나리오, 화면 구성, 연기 연출, 장면의 감정까지 모든 것을 함께 고민했던 거죠.
흥미로운 건, 둘의 관계가 단순한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창작자와 창작자"라는 점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세계를 이해하는 두 명의 예술가가 만난 것이에요. 그래서 그들의 대화는 깊이가 달랐습니다. 김은희 작가가 『시그널』로 시간 여행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면, 장항준이 감독한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 속 인물을 다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나눈 많은 대화 중에서 장항준은 "천만이 되면 성형을 하겠다"는 약속을 농담처럼 건넸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이뤄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성취인지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성공 이후의 현명함, 그리고 또 다른 꿈
천만 감독이 된 이후, 장항준의 계획은 의외로 겸손했습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은퇴하면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이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그가 창작자로서 계속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오래된 자신의 시나리오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30년 전에 썼던 미완성 프로젝트들, 아내가 특히 좋아하던 이야기들. "다시 만들면 어떨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나누고 있다고 했어요. 이건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창작자로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서로를 믿고 지탱해온 부부가 이제는 함께 새로운 작품들을 꿈꾸고 있습니다. 영화감독 장항준과 드라마 작가 김은희, 이 두 명의 창작자가 함께 만드는 다음 이야기가 무엇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그들이 그 여정을 함께 나눌 것이라는 점입니다.
24년의 침묵이 주는 교훈
장항준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실패를 견디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습니다. 누구나 한 번의 성공보다는, 오랜 침묵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 시간 동안 그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많지 않았어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웃음을 주고, 아내의 성공을 응원하고, 가끔 오래된 시나리오를 꺼내들고, 언젠가 다시 영화를 만들 날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기다림"이 그를 살렸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의 실패 후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항준은 달랐어요. 아내라는 믿음이 있었고, 영화라는 사랑이 있었고,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도전할 거라는 작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정말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천만 감독"으로 불리는 장항준은, 여전히 아내 김은희와 함께 새로운 작품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와이프 카드를 긁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창작하는 창작자"로 불리기를 원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부부가 보여주는 가장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